태양의 여자 도영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원죄가 있다. 그것은 바로 동생을 버린 일과 그리고 그 사실을 덮기 위해 계속해서 동생을 외면하는 거짓말이다.
스스로의 원죄를 스스로 치유할 수도 있으련만 그녀는 결코 만들어버린 탑을 부수는데 적극적이지 못하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을 지키면서 대리만족시켜 왔던 하나의 성이면서 집착 할 수있는 유일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녀를 동정하고 싶지만 동정하거나 이해하기에는 그 원죄의 벽이 너무나 무겁고, 계속되는 그녀의 거짓말과 위선은 순간순간 세어 나오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잡을 수 없게 한다.
작가는 참 탁월한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욕을 하고 싶어도 분명하게 욕할 수 없는 어려움을 주고 납득하고 싶어도 납득할 수 없는 그녀의 지속적인 위선을 보여준다.
도영의 진정한 진실은 무엇일까?
최소한 동생에게 있는 악감정은 풀면서 화해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모습이 있기는 한데 그녀의 모습 속에는 진실한 화해보다는 자기상황을 벗어나고자하는 회피가 더욱 심하게 깔려있다.
사월의 대사처럼 용서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 이상의 표현을 도영에게 하는 것은 인간답지 못한 언사인 것이다.
위선으로 일관하면서 시선을 동정으로 몰고 가는 도영의 모습은 사월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언니는 동생을 벽으로 몰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녀가 선택하는 자실의 뉘앙스는 남겨진 자들을 파국으로 몰고 갈뿐 화해와 용서의 장은 오지 않는다.
어쩜 신도영은 정말 순수한 악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악한 마음에 어떠한 흔들림 없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너무나 화려한 보호색을 찬란하게 만들면서 자신을 태워버리는 순수한 악녀!
물론, 작가는 또 다른 반전을 드라마 마지막에 던져두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대로 드라마가 종언된다면 화해와 용서는 오히려 사월만의 강요된 상황이 되는 모순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이대로 끝난다해도 의미는 충분하다. 원죄와 함께 그 악이 시작되는 사회와 주변을 우리는 항상 봐야한다는 우화가 성립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원하건 원치 않던 누군가의 원한을 만들고 있을 수 있다는 종교적 언어를 드라마를 통해 담게 되는 것이다.
태양의 여자는 분명한 선악구조를 가지는 기본 틀을 선택하면서도 그 원인과 상황에 대한 시선을 선택했다. 드라마의 전형성을 유지하면서 그 전형성이 일어나게 된 상황에 작가는 시청자의 시선을 요구한 것이다. 드라마상 이러한 시도는 몇 번 있어왔다. 그러나 대체로 마니아 드라마라는 수식어와 함께 작품성은 높으나 시청률은 낮은 구도를 선보여온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 태양의 여자는 마니아드라마와 통속극과의 어떤 중간지점을 만들어 주었다고 평할만한 드라마 형태를 보여주었다. 결코 녹녹치 않은 구조를 가지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확보하면서 대중적 시선을 잡는데 성공했다. 아마도 이는 김인영작가가 그동안 마니아드라마와 통속극사이의 조우를 통해 작가 스스로가 만든 일종의 결정체적 형식일 듯하다.
작가는 지난 작품 작업을 통해 상당히 높은 시청률의 드라마를 만든 경우도 있었지만, 마니아 드라마라는 평을 받으며 작품성대비 대중성에 대한 거리감을 보여준 예도 있었다. 이러한 두 가지 경험은 태양의 여자라는 작품과 시청률을 건지게 하는 힘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유행보다는 작가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제작사(팬엔터테인먼트)의 방향도 일조를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여자 정혜'이후 연기의 힘이 발화하고 있는 김지수는 신도영 자체에 함몰되어 드라마의 힘을 만들었다.
■ 졸린닥의 대중문화 컬럼 27- 2008/ 7/ 31 (http://www.culturenomic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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