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연수,정보석,박시연,이동욱 그리고 “달콤한인생”

졸린닥 김훈 2008. 7. 23. 09:31

 

상반기 드라마 중에 최고라고 한다면 어떤 드라마일까? 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만한 드라마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 "달콤한 인생"일 것이다. 기존의 드라마와는 다른 형식으로 네 사람의 이야기를 독립되는 듯 하면서도 중첩되게 이어지는 구조를 보여주었으며, 결과에서 부터 과거로 올라가 현재를 종착으로 삼는 구조 역시 신선하다고 할 만하며, 이 외에도 "달콤한인생"은 기존 미니시리즈형 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한 극적요소와 복선이 있었다.

달콤한인생은 네 명이 주인공이며, 네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인생을 그려준다.

하나. 계획적인 펀드매니저 하동원

그는 항상 신뢰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계획과 결과이며 이를 통해 얻는 기쁨이다. 이는 이기적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진실일 수도 있다. 그는 항상 이기고 지더라도 그것은 스스로의 통제에 의해 의도된 패배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달콤한인생"은 스스로의 규칙에서 통제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물론, 드라마는 그런 그의 인생에 파장을 던져주고 또 다른 "달콤한인생"들과의 조우를 하게끔 한다.

그렇다고 드라마는 어떤 사람의 본질을 바꾸거나 바뀌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럼에도 자신으로 돌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기준보다는 각자의 삶에 대한 "달콤한인생"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동원은 부인의 외도와 외면에 혼란스러워하면서 다시 모든 것을 돌려놓으려 노력하다가 스스로의 자리로 돌아가는 구조를 가진다. 타인에게 강요하는 부분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스스로의 "달콤한인생"을 찾는 모습으로 남는다. 즉, "펀드매니저"로써의 꿈을 보이며 그는 마지막 회를 장식한다.

둘. 쿨하면서 순응하는 홍다애

다애의 "달콤한인생"은 편리한 것을 이용하며 그리고 그에 대해 쿨한 모습을 가지는 것이다. 물론 그녀도 진실 된 무언가를 찾아가려는 과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준수에 대한 사랑이라던가 부인에 대한 질투와 분노 등은 그녀의 진실 된 모습을 그리는데 적절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그녀에게 허용될 만한 형태의 인생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스스로의 자리에서 즐기는 것이 그녀의 인생이 된다.

그녀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한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파리에 가서 쇼핑하면서 노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녀는 스스로가 즐겁게 생각하는 영역을 거부함으로써 많은 고통과 슬픔을 가지게 되었고, 자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준수의 마지막 선물이라 할 수 있는 '파리행 티켓'을 통해 파리를 감으로써 그녀가 대강 그 정도면 즐겁다라고 생각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 사실 '다애'라는 인물은 지극히 편리함을 추구하면서도 그 내면의 무엇가랑 혼재하며 갈등하는 현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돈이라는 것과 사랑 혹은 어떤 돈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과의 경계를 그녀는 표현해주고 있다.

드라마는 갈등관계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지만 선택한 지극히 타고난 운명론 적인 모양새를 찾아간다. 지나치다면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식의 다소 보수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물론, 이는 작가가 그동안 시간과 고민했던 삶에 대한 결과치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

셋. 욕망이라는 이름의 이준수

유독 작가가 허용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면 '준수'일 것이다. 어쩌면 '준수'는 작가의 모럴일지도 모르겠다. 준수는 마치 붙잡혀온 사내처럼 변해있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면서도 순응했다. 물론 가끔씩 나타나는 존재에 대한 분노는 있었지만 끝까지 잘 참아가다 친구를 결국 사망시키면서 극적인 변화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다. 그러나 작가는 결과 '준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히려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더 밀어 넣으면서 인과응보적인 결말을 미화시키는 형태로 '준수'를 마무리한다.

하동원가 홍다애에게는 기존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가게 했으면서 준수에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사랑을 통해 무언가를 극복하면서 스스로 선택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결국 그는 친구를 죽인 원죄의식을 가슴에 담고 스스로 자신을 던지는 형태로 극이 마무리 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생겼는데도 준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는 사망하게 된다.

작가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쿨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죽음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어야 했으며 그 중간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준수는 결국 악어새로 살다가 악어를 죽이고 같이 죽어버린 것이다. 악어새에게 주어진 인간적인 삶의 시간이란 죽기위한 과정에 필요한 길이 만큼만이 주어졌었다.

넷. 이기적인 사랑만을 추구한 윤혜진,

'윤혜진' 과연 그녀는 무엇을 원한 것이었나? "달콤한인생"에서 가장 이기적인 인생을 꿈꾸는 혹은 이상적인 인생을 꿈꾼 사람이 있다면 '윤혜진'일 것이다. 오로지 남자가 전부여서 결혼을 하고 또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는 사람. 그녀는 드라마의 처음부터 끝까지 유일하게 사랑만을 찾은 사람이었다. 남편과의 사랑에서 준수와의 사랑으로 변화하면서 영원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희망했다.

하지만 현실은 존재할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은 항상 영원이라는 표현보다는 어느 정도 타협 속에 가끔씩 생각하는 그런 요소였다. 마치 풍경화를 보듯 이정도면 좋은모습이지라는 식의 그림을 우리는 대체로 행복이나 사랑으로 용인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윤혜진'은 이를 거부하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의 가장 중요한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달콤한인생"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녀의 사랑 찾기는 타협이 없었으며 파국으로 치달려 같다. 먼저 '하동원'과의 파국을 시작으로 '이준수'와의 파국?을 끝으로 드라마는  마무리가 된다. 물론, 사랑은 항상 내 가슴 속에 기억되고 살아있다는 우화를 통해 파국을 미화하지만 과연 그것이 옮은 것인지 의문이 많다.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한사람의 종언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녀의 자아 찾기는 무서운 과정이다.

'준수'의 사망에는 '윤혜진'의 지독하게 순수한 혹은 이기적인 사랑이 존재했다. '준수'는 그러한 '혜진'의 사랑 앞에 움직일 수 없었으며, 그가 선택한 것은 '윤혜진'이 소리치며 말한 자신 앞에서 죽으라는 외침의 선택을 하게 된다.

드라마의 시작과 끝은 '윤혜진'한테 있었다. '준수'의 말처럼 '자신을 살게 해준 여인'이면서 사실은 자신을 죽게 하는 여인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나의 이런 생각에 반대하는 부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으로 미화시키기에는 준수에게 부여된 삶의 궤적이 안타깝다. 만약 '윤혜진'이 체념과 타협을 조금 해주었다면 어떠 했을 까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윤혜진'은 마치 순수를 찾고자 스스로 진실 된 모습을 하고 싶어 지나치게 진지한 사람들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느낌도 있다. 비하하자면 자신의 순수를 위해 타인의 선택을 좌절시키는 그런 모습 말이다.

어찌하건 달콤한 인생은 종전에 단막극에서나 찾을 만한 드라마였으며, 영화로도 각색을 해봄직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에서 떠들었던 이러저러한 내용의 꼬리표에 의해 이 드라마는 상반기 나에게 있어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각 등장인물간의 다양한 복선과 정서를 정말 드라마는 멋지게 표현에 주었다. 또한, 극의 흐름을 계속 유지시킨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어쩌면 "달콤한인생"은 배우로써 오연수, 정보석, 이동욱, 박시연에게 그들의 대표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데 완벽한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 졸린닥의 대중문화 컬럼 25- 2008/ 7/ 23 (http://www.culturenomics.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