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송중기' 사극에 로맨스를 불어넣다. <성스>의 기억.

졸린닥 김훈 2011. 11. 8. 11:09

꽃미남 송중기는 어느 날 문득 사극에 나타나 곱상한 얼굴을 드리우며 우리나라 사극의 또 다른 발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뽀송한 얼굴의 미소년이 사극에 나타난 것이다.

 

보통 사극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주 예전의 <조선왕조오백년>이었고, 조선을 떠나서는 <태조왕건>과 같은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극은 역사를 기반으로 극화하면서 어떤 통사적 사실과 허구의 조합 속에 만들어지는 드라마였다.

 

때문에 사극의 중요한 핵심은 고증과 역사적 평가에 얼마나 근접할 수 있느냐가 항상 논란의 중심이었다. 과거의 기록과 현대적 평가 속에 시청자의 정서가 나누어지면서 이슈도 만들고 시청률도 올리는 그런 형태다.

 

시청자에 있어서도 사극은 비교적 연령층이 높은 혹은 남성 시청자가 주요 고객인 장르였다. 어찌 보면 가부장사회를 역설하는 마지막 관문 같은 형태였을지도 모른다. 대분의 사극이 충과 효를 기반으로 개인의 가치보다는 사회 혹은 국가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가장 독보적인 대사라면 ‘사사로이 그런 일을 도모할 수 는 없습니다.’ 라는 식의 대화였다. 글자 그대로 개인적인 감정은 대의를 위한 일종의 죄악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대사가 있다면 ‘아녀자가 어찌 그 같은 말을 한단 말이요’라는 식의 대화다. 이는 남존여비식의 접근을 떠나 사극이 가지는 남성중심 사회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어구라 할 수 있다. 여자이기에 ‘나쁘다 혹은 천하다’는 등식이 아닌 그 세상에는 남자만 있는 것이며, 여자의 제안 혹은 의견은 중심이 될 수 없었다.

 

즉, 우리의 기존 사극 혹은 정통사극에는 여성은 주변인이며 열외였다. 따라서 사극은 남성적 이상향을 보여주는 가장 가부장제스런 그런 드라마 형식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사극은 중년 남성을 중심으로 시청자 층을 모우는 그런 드라마장르였다.

 

어쩌면 우리의 중년이상의 아버지들은 이런 사극을 보면서 어떤 권위와 힘 그리고 질서에 대한 위안을 받으며 속절없이 변해가는 사회를 아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사극은 젊은 세대 혹은 여성에게는 큰 재미가 될 수는 없었다. 항상 나오는 말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대의’였으며, 남성만이 중심이 될 수 있었기에 그들이 가지는 시대적인 요구와 유행과는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간혹 ‘인현왕후’와 ‘장희빈’같은 소재는 여성시청자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모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남성적 대의보다는 ‘투기’와 ‘간계’로 묘사되며 남성들의 이야기와는 질적 차이를 보여주었다.

 

항상 사극의 핵심은 남성은 ‘대의’, 여성은 ‘투기’라는 기본 범주를 넘지 못했다.

 

현대극이 보여주는 다양한 개인적인 감성이나 가치 혹은 사랑과 같은 정서는 사극에서는 부차적이거나 비주류적 측면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형태는 배우에 있어서도 ‘카리스마’로 표현되는 사극적인 면모의 배우들이 주요하게 역할을 해왔으며, 신인급 배우보다는 중견 연기자들의 안정된 연기를 통해 드라마의 기본구조를 만들어 왔다. 더불어 방송시간대에 있어서도 주말 심야시간대를 중심으로 사극은 긴 호흡의 방영회수를 편성하며 꾸준히 유지해 왔다. 현재, 이런 흐름의 대표적 사극으로는 KBS1TV의 <광개토태왕>으로 여전한 인기와 견고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까지가 지난날의 사극 혹은 정통사극의 면모다.

 

<성균관스캔들, 이하 ‘성스’>의 꽃미남 3인방 혹은 4인방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자신의 가치로 내세웠다. 물론 대부분의 내용이 조선시대의 정치 이상과 연결된 것이다. 그런데 계집녀에 수풀 림의 ‘여림’이라는 별호를 쓰는 ‘송중기’분의 ‘구용하’는 색다른 한 마디 던진다.

 

‘나 구용하야!’

 

보통의 사극은 시대적 가치를 중심으로 찬반 혹은 승패를 말한다. 그리고 <성스>에서도 이런 흐름은 일정부분 이어졌다. 그러나 ‘구용하’는 이런 가치를 과감하게 덜어내고 자신을 외친 것이다.

 

이것은 이상적 가치 실현을 위한 자아의 강인함과는 다른, 허세에 가까운 인간적인 잡학다식으로 ‘구용하’는 이상적인 가치보다는 일상의 모든 것에서 개인적인 시각을 세상에 드러내는 적극적인 자아를 사극에서 보여준 것이다.

 

더불어 ‘여림’이라는 별호역시 사극에서는 상당히 도발적인 호칭이다. 여자를 멀리하거나 주변인으로 묶던 사극에서 여자의 음모를 연상하게 하는 ‘여자의 숲, 여림’이란 호칭은 사극의 금기를 털어버리는 도발수준의 호칭이 아닐 수 없다.

 

사극의 이런 변화가 어느 날 문득 <성스>에서 보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변화를 이끈 또 다른 형태의 사극들을 열거해본다면 가장 앞선 부분에 <허균>으로 시작해서 <대장금> <선덕여왕> 같은 사극들이 시청자의 높은 관심 속에 성공했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먼저 1999년에 방영 된 <허균>은 기존의 왕조실록 중심의 사극에서 다른 소재발굴이 이루어지면서 대중적 성공을 만들었다. 보통 사극하면 왕실과 사대부를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가 형성이 되었는데 <허균>은 이러한 흐름에서 탈피하여 ‘동의보감의 허균’을 소재로 사극의 진일보한 발전을 보여준다. 특히, <허균>은 인간적인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그간 사극에서 소외되었던 개인가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데 많은 노력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이러한 시도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 인간적인 측면이 중시되는 사극 바탕을 만드는데 많은 공헌을 한 것이다.

 

2003년에 방연 된 <대장금>의 경우도 <허균>에서 보인 인간적임 면모와 왕조에서 벗어난 스토리 구성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진화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성’ 중심의 사극이다. <허균>이 많은 발전을 보여준 사극이었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장금>의 경우 ‘음식’을 중심으로 한 여성중심적인 세계관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사극최초의 긍정적인 여자 주인공을 탄생시키게 된다.

 

이를 통해 <대장금>은 중년남성 중심의 시청층을 여성 및 젊은 세대들까지 확대시키며 국민드라마의 반열까지 오르게 되고 국내를 벗어나 한류의 또 다른 큰 축으로 작용하여 우리나라 사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게 된다. 한마디로 대장금은 사극의 울타리를 어마어마하게 확대시키는 힘을 보여준 것이다.

 

다만, 이런 <대장금>에도 아쉬움이 있었다면 남성과 여성의 기능적 구분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대장금’의 성공을 위해 수많은 조력자적인 ‘남성’의 등장이 필요했으며, 독자적인 존재의 모습으로 ‘대장금’은 미흡했던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대장금>이 보여준 ‘여성성’과 ‘소재의 확장’ 그리고 ‘사극적 멜로라인’은 기존의 <허균>에서 또 다른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대장금>의 이런 아쉬움은 2009년 <선덕여왕>을 통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왕조의 이야기 속에서도 여성은 굳건한 자신의 위치를 보여주며 정치적 입안자로써 대의의 최종점을 <선덕여왕>은 보여준 것이다. 이는 ‘조선왕조오백년’ 혹은 ‘고려사’ 중심에서 보인 남성적 정치학의 사극을 여성적인 면에서도 완성시켜 보인 것이며, 한마디로 정통사극이 가졌던 정치적 여성 혹은 지도자에 대한 편견마저도 완전하게 극복되는 형태를 보여준다.

 

이렇듯 사극은 정통사극과 함께 또 다른 형태의 사극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우리나라 드라마 형식의 또 다른 발전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의 흐름에 <성균관 스캔들>은 도도하게 위치한다.

 

편견으로부터 다양한 시도를 해본 사극은 이제 개인적 감성을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멜로를 지나 ‘로맨스’를 꿈꾸게 된 것이다.

 

<성스>에게 조선시대의 사극적 요인은 드라마를 위한 독특한 소재이자 배경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왕조나 특정 인물의 전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 젊은 청춘남녀의 사랑과 꿈 그리고 성장을 위한 조선시대 학원물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이제는 현대극과 드라마 내용 및 기획에서 별 차이 없는 수준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성스>는 그 특별한 등장인물만큼이나 사극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편견을 접게 된다. 다름 아닌 배역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너진 것이다.

 

이미 앞에서도 말했든 주요 사극의 등장인물들은 사극적 특징의 배우들이 배역을 가져갔다. 그러니까 연기라던가 카리스마 등이 주요한 배역결정 요인으로 작용한다. 곱상하거나 소위 말하는 ‘아이돌’스러운 외모의 배우들에게 사극은 다른 분야였던 것이다.

 

그러나 <성스>는 이러한 배역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며 ‘미소년’들을 전진 배치했다.

 

이것은 그나마 사극이 가졌던 배우에 대한 어떤 권위적 모습마저 던져 버림으로써, 사극도 일반 드라마와 같은 눈높이를 가지게 된 것이다. 더불어 ‘정통사극’과 함께 또 다른 형태의 ‘현대적 감성의 사극’이 형식적으로 완결되었음을 말해준다.

 

사극은 이제 역사와 전기에 묶여있는 구조가 아닌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드라마 기획이 열리는 장르로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극적인 진화는 시청자들과 함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사극의 시청층이 10대부터 중장년까지 확산 된 것이다. <성스>의 곱상한 미소년 3인방을 통해 수많은 10대 팬 층이 사극을 몰입했으며, 남장 여자의 대물 김윤희 분의 ‘박민영’을 통해 역사관에서 자유로운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었다.

 

<성스>는 사극의 마지막 보류라 할 수 있는 10대 마저 팬 층으로 흡수하며 청춘 로맨스 사극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나온 과거 시대 속 어디에서도 현대적 일상과 감성을 투영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적인 도전이 필요할 뿐이며, 이는 ‘정통사극’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사극적 공간’을 창출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성균관스캔들>은 제목부터 그러했듯이 이러한 감성을 증명해 보인 첫 번째 사극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조신시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멋진 로맨스를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