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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닥훈씨

코커스 페니실린 1

by 졸린닥 김훈 2009. 9. 24.

코커스 페니실린을 아시는지?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북유럽 그러니까 핀란드에 살고 있는 백작이라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다. 사실 이름이 페니실린이고 성은 코커스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코커스 페니실린이라 뒤에서 부른다. 물론, 정면에서는 백작님이라는 그냥 일반 호칭을 써가면서 말을 하지만 그의 이름을 코커스 페니실린 백작이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코커스 페니실린 그 사람은 말야..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가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코커스 페니실린 백작은 좀 사람 대하기를 주저하는 편이고 낯을 심각할 정도로 가렸다. 보통 모르는 사람과 대화라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의미 있는 대화다운 대화를 말하는 게 아니라 눈인사라도 하면서 안녕하세요라는 극히 형식적인 대화라도 하려면 최소한 그를 반년이상은 봐야 가능하다. 그렇다고 그가 괴팍하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백작은 말도 조심스러워했고 모든 것이 작게 작게 움직였기에 약간 겁을 먹는 태도가 일관이었다. 그래서 누가 아는 척하고 인사라도 하면 그저 도망치듯 시선을 돌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이동해버린다.

 

그래서 처음 코커스 백작을 만나는 사람은 그 사람을 권위에 빠진 불손하거나 건방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얼굴과 소박한 외모는 그런 상상을 오래 못하게 하고 그저 그가 조심하거나 겁이 많은 사람이라는 인식과 백작이라는 칭호는 다만 칭호일 뿐 어떤 거대한 그런 것이 될 수 없다고 느끼게 한다. 어쩌면 백작이라는 호칭은 그냥 호칭일 뿐 정말 제대로 된 작위가 아닐 수도 있다. 사실 여기 핀란드에는 백작이라는 작위가 없다. 그런 작위를 내려줄 사람도 없고 그런 작위를 붙여서 다니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이곳 핀란드 뭉셀라푼시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코커스 페니실린 백작이라고 부른다. 물론 뒤에서는 이러저러 하게 막 부를 수도 있지만 그와 같이 있거나 그의 집안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그에게 꼭 백작이라는 작위를 붙여서 그에 대한 어떤 경의를 표하는 형식을 가진다. 그렇다고 그 이유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그냥 할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가 그랬고 할머니, 어머니 가족 들 모두가 그랬기에 이곳 시에 사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한다. 어쩌면 백작이라는 칭호는 성처럼 혹은 이름처럼 사용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의 전체이름은 코커스 페니실린 백작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는 정말 백작의 작위를 받은 가문의 자손으로 정말 백작인 것이다. 어느 날 이곳 뭉세라푼시의 한 젊은 대학생이 그의 도서관에서 문득 코커스 백작가문을 그냥 호기심에 찾아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이 청년이 대단한 목적의식이 있거나 인명록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별 쓸때 없는 것에 호기심이 집착처럼 생겨 끝까지 알아보는 시간때우기를 하듯이 이 청년 역시 문득 왜 사람들이 코커스 사람들을 백작이라 부를까 라는 단순한 호기심과 필란드에는 백작이 없다는 그런 관계성으로 그닥 성적이 우수하지 않은 그의 두뇌와 손을 이용해 코커스백작 가문을 정보검색대에서 찾아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생각보다 코커스가문의 정통성을 확인시키는 일이 되어버렸다. 코커스 페니실린 백작은 정말 혈통있는 가문의 자손으로 백작작위를 받은 지 최소한 600년이 넘은 그런 집안이다. 혹시 아는가! 자신의 가문이 문서화 되어 600년 전에 나올 수 있는 집안은 그렇게 많지 않다. 600년이라니 이 시간은 대서양 건너 미국이라는 나라가 적어도 2~3번은 다시 기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만큼 코커스 가문은 뿌리가 깊은 것이다. 특히, 자신의 할아버지 다음의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할 지 모르는 이 젊고 시간만 많은 대학생에게는 짐작이 가는 영역이 아니다.

 

어찌하건 이 젊은이가 찾아준 봐에 따르면 최초로 기록된 코커스가의 이름은 1400년대의 이탈리아 남부 시실리 섬에서 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코커스 가문은 사실 이탈리아 사람들이고 그 후손이 이곳 핀란드에 살고 있는 것으로 그의 백작이라는 작위가 시작된 곳은 핀란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가 있다. 어찌하건 최초의 코커스 아니 기록으로 보여진 최초의 코커스는 이탈리아 남부 시실리 섬에서 살고 있던 아찌오 코커스였다. 아마도 작위가 붙어있지 않은 것을 봐서는 이 당시는 백작이라는 칭호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코커스 가문은 상당히 유려한 집안이었을 것이다. 더 기록을 보면 아찌오 코커스는 시실리 섬에서 좀 더 떨어진 하지만 통칭은 시실리 섬으로 명명되는 그런 곳에 살았다. 섬 이름은 시실리안부트라고 되어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600년이 넘은 기록을 어떻게 다 믿을 수 있겠는가 다만, 믿건 안 믿건 지금의 생활에 아무런 영향이 없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보기로 하겠다.

 

시실리안부트라는 섬에 코커스는 살고 있었다. 이 섬은 대부분의 섬사람들이 그렇듯 어업에 종사했다. 기록에 의하면 시시리안부트는 고기가 많고 아니 아주 많고..굉장히 많고 많은 어장을 가진 섬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고기가 많은지 사람들이 어지간해서는 기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을 망치게 되면 분노하여 잡은 고기를 모두 불사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물고기가 너무 많았다. 또한, 섬은 채소도 잘 자라는 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채소와 물고기를 주요한 식사와 요리로 해서 먹었다. 다만, 이 섬은 고기가 없었다. 그러니까 소, 돼지, 양, 염소 등등의 이러한 고기들이 단 한 마리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이것들을 외지에서 사와 기르려는 시도를 자주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죽어버렸다고 기록에 나와 있다. 모 미친 기록일지도 모른다. 다만, 하나 꼭 하나가 살아서 번식을 했는데 그것은 닭이었다. 닭만이 유일하게 이 섬에서 살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물고기, 채소 그리고 닭으로 연명을 했다.

 

물론, 풍부한 해산물과 채소는 그들의 식탁과 수명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더불어 닭도 있었고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 닭의 소유자가 바로 우리의 주인공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여러 아버지인 아찌오 코커스인 것이다. 아찌오 코커스는 바로 이섬에서 유일하게 닭을 길렀으며 사람들에게 신선한 달걀과 고기를 선사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는 이러한 독점적인 구조로 인해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당시 백작은 아니었지만 모두들 그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 풍성한 물고기와 채소 때문에 이 닭고기와 달걀은 너무나 비쌀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병아리를 키워보려고 해도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병아리 감별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례는 여러 사람이 감별할 수 있었는데 이 섬의 병아리 감별사였던 사람들이 코커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날한시에 다 죽어버렸다. 한마디로 코커스 집안 외에는 병아리 감별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더불어 이 집안 특유의 낯가림과 소극적인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용기도 없었고 사람들 역시 한날한시에 모든 사람이 죽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자 모두들 이 닭을 기른다거나 병아리를 키운다는 생각을 절대 할 수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코커스 가문의 선량함으로 인해 그들은 닭고기와 달걀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잡은 물고기와 키운 채소들을 코커스 집안에 주고는 달걀과 닭고기를 가져갔다. 가격은 딱히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많은 물고기와 채소가 있었기에 그들은 많이 주고 조금 가져오는 그런 행보를 보이게 되었다. 사실, 그러한 행위는 이들에게 별 부담이 없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코커스 집안에 버리고 온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들, 코커스 집안이 바보들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라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달걀이나 닭고기를 팔 거라고 생각들을 한 것이다. 더불어 생선과 채소가 아닌 돈이나 보석 같은 것을 원할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찌오 코커스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자기 집안만이 가지게 된 재능을 신께 감사드리며 홀로 남은 병아리감별사인 자신이 언제 후다닥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절대 욕심을 가지지 않고 사람들과 평화롭게 닭고기와 달걀을 나누며 살기로 다짐하고 다짐했다. 더불어 수줍은 그의 성격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두려워하여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사람들도 그이 집안 성격을 알기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더불어 채소와 물고기는 많음으로 코커스 가문에 어떤 악한 마음을 가지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모두들 그냥 자신의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고기와 해산물을 잡고 또 다른 사람들은 채소를 키우며 코커스집안 달걀과 닭고기를 공급한다..그것이 이 시실리아부트섬의 관습이었다. 코커스집안의 욕심이 없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코커스 집안은 어쩔 수 없이 막대한 부를 축척하게 된 것 뿐이었다. 그러한 세월이 지속적으로 싸이자 이 집안 너무나 큰 부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부를 이루는 데는 또 다른 코커스인 아달린 코커스 때문이다.

 

지나치게 길었다.

아달린 코커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해야겠다. 우리 젊은 대학생은 그리 유능하거나 끈기가 있는 우수한 학생이 아니라 생각나면 훅하고 봤다고 또 시들해지는 그저 그런 능력의 대학생이다 살아오면서 상위권이라는 표현을 정말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며, 하위권과 중위권만을 무슨 우주의 전부인 냥 왔다 갔다 했다. 그나마 이곳 대학에 들어가게 된 것은 그가 유능해서가 아니라 정원이 미달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들 알겠지만 핀란드라는 곳은 그렇게 경쟁이 심각하지 않기에 이러한 적당한 형태의 학생의 생존과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 다만, 코커스 가문에 대한 그의 지나치게 짧은 호기심이 우리에게 아찌오 코커스만을 살짝 알려준 체 아달린 코커스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기게 된 것이다.

 

어찌하건 코커스페니실린 백작은 최소한 이탈리아 피를 받은 사람으로 그의 조상은 근본적으로 수줍고 소심하며 착한 사람이라는 것과 그가 상당한 부를 아주아주 예전부터 가졌다는 것 정도를 우리는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오늘은 만족해야 한다.

 

그 무능하고 나태한 대학생이 지금 연예를 하기위해 약속장소로 나가버리고 없다. 다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달린 코커스라는 이름을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 다행이다. 병아리 감별능력을 가진 생존 한 유일한 병아리 감별사 아찌오 코커스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에는 가능할 수 도 있다.